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웰컴 투 비디오’, ‘N번방’, ‘딥페이크’ 등으로 대표되는 범죄 양상은 기술 진화에 맞춰 고도화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피해 영상에 개인정보까지 함께 유포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루밍 범죄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아동·청소년을 성매매 ‘주체’가 아닌 성착취 ‘피해자’로 인식할 수 있도록 관련 용어와 법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아동·청소년 성착취 실태와 과제’ 토론회에서는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실태와 법·제도적 개선 과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 토론회는 한국여성변호사회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효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 팀장은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90%가량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가해자를 처음 접촉했다”고 했다. ‘디지털 네이티브(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한 세대)’인 아동·청소년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는데, 성범죄 가해자들은 이를 악용해 피해자를 탐색하고 교묘하게 범죄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8년 만에 피해접수 1201% 증가
피해 영상과 함께 피해자의 이름, 나이, 주소 등 개인정보가 함께 유포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성센터에 따르면 개인정보가 동반된 피해 접수 건수는 2018년 5935건에서 2024년 7만7652건으로 약 1208% 증가했다. 피해자 4명 중 1명은 신상이 함께 유포되는 셈이다. 김 팀장은 “가해자들이 그동안 수집한 개인정보를 협박 수단으로 사용해 피해자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며 “플랫폼 차원의 안전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성년자 관련 단어와 성적 표현이 결합된 닉네임이나 해시태그가 온라인 플랫폼에 등록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채팅앱 가입 시 실명 인증 절차 강화와 채팅앱 신고 기록 확인 가능 여부 점검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의 혼선도 문제로 지적됐다. 윤영미 경기도 디지털성범죄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장은 “민원실, 여성청소년과, 사이버수사팀 등 경찰서마다 접수창구가 달라 청소년이 어렵게 신고를 결정하더라도 혼란을 겪는다”며 “신고 과정에서 부모님은 알고 있냐, 신고 내용은 부모님께 고지된다는 등의 질문 역시 피해자가 신고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다.
‘성적 착취 목적의 접근’만 처벌?
그루밍 성범죄의 법적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현행 청소년성보호법은 ‘성적 착취 목적의 접근’만 처벌 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정작 성적 착취의 법적 정의가 없어 적용 범위가 불명확하다”고 했다. 실제로 2023년 16세 미만 피해자에게 성인이 반복적으로 성기 사진을 보냈음에도 상호 동의 여부가 쟁점이 되며 불송치된 사례가 있었다.
이 대표는 “법 제15조의2 ‘성적 착취 목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성적 의사소통’이라는 개념을 신설해야 한다”며 “법정대리인 모르게 피해자를 외딴 공간으로 데려가는 행위도 명시적으로 처벌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매매’라는 용어 자체가 피해자의 입장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대표는 “성매매라는 용어는 아동·청소년이라는 지위를 악용한 성착취라는 관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라며 “국제적으로도 아동 대상 성매매는 ‘성착취’ 또는 ‘학대’로 표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보호법’에 나오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라는 표현부터 잘못됐다”며 “이를 ‘아동·청소년 성착취’로,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은 ‘성착취 아동·청소년’으로, ‘아동·청소년 매매행위’는 ‘인신매매행위’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아동·청소년 성매매 사건이 성폭력 사건과 분리돼 처리되는 현행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온라인을 매개로 한 성매수 범죄가 2020년 대비 2024년 4배로 늘었다”며 “온라인 그루밍을 통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은 성매매 사건과 혼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법제와 지원 시스템에서는 이 둘을 분리하려고 한다”며 “이는 오히려 피해 아동·청소년이 신고할 생각을 못하게 하고 성매수자나 알선업자에 의해 협박까지 받게 된다”고 했다.
조 대표는 “아동·청소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은 신체 영상 요구부터 유포·판매, 성폭력·성매매 알선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포괄해야 한다”며 “성매매와 성폭력의 구분보다는 피해자의 상황 전체를 중심에 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