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황금연휴 첫날인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웃렛 건물 뒤편, 첨탑이 우뚝 솟은 교회에서 봉천역 방면으로 골목을 따라 내려가니 군데군데 모텔들이 눈에 띄었다.
술집과 식당, 무도장, 모텔이 몰려 있는 유흥가는 지난 3월 26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봉천동 10대 가출 소녀 살해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이혼 가정서 성장한 중2 소녀의 가출
한현서(가명)양이 열네 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A모텔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봉천동 모텔촌에서 가장 최신식으로 지어진 5층짜리 건물이다. 모텔 자동문 입구에는
‘19세 미만 출입·고용 금지 업소’라고 버젓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도 현서는 출입을 제지당하지 않고 성매매를 하러 모텔에 왔고,
결국 김모(38·구속 중)씨에게 목이 졸려 질식사했다.
이 모텔 맞은편 건물 지하로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PC방이 나타났다.
어두운 분위기의 PC방에서는 몇몇 남자들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성매매 알선책(구속 중) 3명은 거의 매일 저녁 현서를 이곳에 끌고 나왔고,
채팅 앱에 접속해 조건만남 성매매를 할 남자들을 구했다.
A모텔에서 100m쯤 골목을 따라 내려가니 다소 허름한 B모텔이 보였다.
현서는 2월부터 이곳에서 성매매 포주 2명과 성매매 여성 1명과 장기 숙식을 했다.
하지만 이 모텔 업주 역시 현서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서울 관악경찰서 강력1팀 이근철 경위는
“모텔 두 곳의 업주는 청소년보호법 위반, PC방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며 “관할 구청에서 곧 영업정지든 폐쇄든 행정처분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수능시험 이틀 뒤인 11월 15일, 토요일이던 이날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살던 중2 현서는 엄마와 언니를 두고 서울로 가출했다. 현서에게 넉 달 동안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2015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번 이상 가출 경험이 있던 중학생은 9.0%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꼴이다. 가출 이유는 ‘부모님 등 가족과의 갈등’(70.3%)이 가장 많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8.3%), ‘가출에 대한 호기심’(5.8%) 순이었다.
현서는 이혼 가정에서 자라났다. 엄마는 호프집을 운영하며 딸 둘을 힘겹게 키웠다.
현서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늘 바쁜 엄마보다 언니와 더 친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출 이후 언니와 계속 연락하면서 “친구랑 잘 있다. 찾지 마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아이가 집을 나가자 엄마는 괴산경찰서에 가출 신고를 했다.
현서가 집을 떠난 것은 중2 때다. 중2병은 사춘기의 정점인 중학교 2학년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른 누구나 겪었을 ‘질풍노도의 시기’를 현서 역시 편안히 넘길 수 없었던 걸까.
현서는 가정환경이 답답하고 숨막혔는지 모른다. 이 경위의 말.
“현서는 서울에 오기 전이나 오고 난 뒤 가출한 동네 친구나 학교 선후배와 만났을 것이다.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 아이가 대도시에 가고 싶은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조건만남 소녀 조종하는 성매매 알선책
도시의 화려한 불빛은 이겨낼 수 없는 유혹이었을까.
가출은 했지만 어린 현서가 일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가출 소녀에게 성매매 알선책들이 ‘검은손’을 뻗쳤다.
지난해 12월 10일께 성매매 알선책 김기수(가명·27),
박준영(가명·27)은 또 다른 성매매 알선책(여성)의 소개로 현서를 만났다.
살인사건이 나기 한 달 전에 최지석(가명·28)이 합류했다. 셋은 같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친해진 사이였다.
현서와 성매매 알선책 남성들은 신림동의 여러 모텔을 돌아다니며 숙박을 했다. 남자 둘이 한 방을 썼고,
현서는 또 다른 성매매 여성 김슬아(가명·20)씨와 한 방을 썼다.
이 경위는 “이들은 낮에는 내처 자다 저녁을 먹은 후 와이파이폰(공기계)을 들고 PC방에
나가 대기하면서 성 매수남들과 접속했다.
현서가 성인인 것처럼 가장해 스마트폰 채팅 앱에 ‘○○○○ 가능, ○○ 사용’ 등의 글을 올렸다”고 전했다.
현서가 매일 접속한 채팅 앱 ‘즐톡’은 속초에 본사를 두고 있다.
최근 성매매 창구로 악용되면서 ‘폐쇄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경위는 성매매 알선책들을 ‘포주’로 지칭하면서 “현서는 키가 165㎝로 컸으나
누가 봐도 열네 살짜리 어린 아이다. 아이를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다”며 혀를 찼다.
현서는 일주일에 5일씩 봉천동 모텔촌에서 성매매를 했다. 피크 타임은 퇴근 시간 후였다.
저녁 7∼10시에 채팅 앱 접속자가 가장 많았다. 접속자 중 직장 남성들이 다수라는 얘기다.
이틀 일한 후 주중에 하루 쉬고 주말에 하루 쉬었다. 생리 때나 몸이 아파야 쉬었다.
그러는 동안 현서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살인사건이 터진 올해 3월 26일까지
넉 달간 하루 서너 번씩 250여 회의 성매매를 했다. 시간당 13만∼15만원을 받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알선책들은 처음에는 3만원만 떼고 10만원은 현서에게 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도주했다가 마지막에 구속된 주범 김기수는 “70%를 떼었다”고 인정했다.
100만원가량 벌면 성매매 알선책들이 70만원을 갖고 현서에게는 30만원만 줬다는 것이다.
“조건만남은 가출 소녀 혼자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성매매 포주들이 여자 2, 3명을 데리고 일한다.
이들은 원정 성매매도 한다. 현서와 같이 일한 성매매 포주들도
여자들을 데리고 울산에서 성매매를 하다 적발돼 경찰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이 경위)
성매매 알선책들도 현서를 만난 지 하루이틀 만에 열네 살이란 나이를 알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현서는 여자친구가 있는 박준영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오빠가 시키니까,
살기 막막하니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성매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성매매 알선책들에게 양심은 없었다. 14살 현서는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였다.
“가만히 앉아서 눈만 껌벅거려도 하루 30만∼40만원씩 손에 쥐었으니까….
주범인 김기수는 모텔 주변 오피스텔에서 따로 살았는데 외제 차를 끌고 다녔다.
돈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다.” 중3 딸을 키우는 이 경위는 “판별력을 기대하긴 현서가 너무 어렸다”며 “다
어른들 잘못 아니겠느냐. 아이가 불쌍하다”며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15. 05. 06
출처-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83177#.VVGEr_mwe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