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의 배려로 한국여성재단에서 진행한 ‘짧은 여행, 긴 호흡 비전여행’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이기에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함께 하는 이들에게 방해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5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그곳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습식사우나에 온 듯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웠습니다. 금방 적응되었지만 처음 그 느낌은 생소하고 약간의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적당하였습니다. 짐을 정리한 후 걸어 본 밤거리는 아는 이 하나 없었지만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조금 빠듯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챙겨 먹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라오스의 거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기간 동안 여러 곳을 관광하였지만, 저는 특히 라오스 거리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저에게 익숙한 모습은 모두가 바쁘고 정신없는 모습이지만,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저 또한 조급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봤던 여유로움에는 전기세가 너무 비싸 집에 불을 켜지 못해 낮에는 집 밖에서 다른 이와 수다를 떨거나 해먹에서 잠을 청한다는 사실이 숨어있었습니다. 한가롭고 여유로움이 아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제한되고,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은 일상에서 제가 찾고 싶었던 여유로움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모습이 안타깝거나 힘들어 보이기보다는 부러움이 더 컸습니다.
여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식사였습니다. 가기 전부터 각오했었지만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은 정말 먹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이 하나씩은 있어 그렇게라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그동안 폭식증 환자처럼 허기를 느끼면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음식을 먹던 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렵게 식사를 했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딱 저에게 맞춰진 것들로만 구성된 음식들을 먹으면서도 감사할 줄 몰랐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규칙적인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저에게 맞춰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저는 지금 좋은 기회로 이곳에 와서 즐기고 있지만, 지금 제가 먹고 보고 느끼는 것들을 정작 현지인들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이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는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고 이 곳을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마냥 즐거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비전여행은 저에게 쉼을 주기도 하였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 여행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들, 잘 몰랐던 사실들... 이곳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저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고, 라오스 여행에서 많은 시간 이동을 하며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마친 지금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너무 조급하고 바쁘게만 살아가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 조금은 느리지만 정확하게, 그리고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그동안 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던 일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겁나거나 두려워서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더라도 그렇게 큰일이 일어난다거나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것을 접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저희 십대여성인권센터와 한국여성재단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