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보내는 편지
2013/12/16
어느덧 2013년도 며칠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1년이면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지난 1년이 긴 세월처럼 느껴집니다. 1월엔 이사를 하고, 3월엔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가 들어왔고, 5월엔 단체 개소식을 했습니다. 또 4기 사이버또래상담원들이 3명이나 사또실에서 자신들의 성장을 위한 길을 나섰습니다. 7월과 10월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개정 워크숍을 개최하였고, 11월은 더욱 전문적이고 내실있는 활동을 위해 단체명을 ‘십대여성인권센터’로 개정하였으며, 12월엔 34명의 법률·의료·심리지원단 발대식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참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옛날처럼 일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그렇게 또 쉼없이 달렸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1년을 지내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과제 앞에 선 느낌입니다.
성인 성매매 피해자를 중심으로 일할 때와 아동·청소년 성매매 피해자를 중심으로 일하는 것이 참 여러 가지로 달랐습니다. 아동·청소년 쪽은 성인들보다 훨씬 지지도 받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과 청소년이 국가와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이나 제도들도 아이들에게 맞추고 수많은 아동·청소년 복지 단체와 상담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밖 아이들이나 가출 등으로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 등의 수많은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정책이나 지원체계는 전무하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합니다. 아동·청소년 정책은 오직 학교 교육과 대학진학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가정에 있어야 하고, 감정과 감수성은 성인이 될 때까지 느끼면 사고를 칠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니 되도록 억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청소년기는 결코 ‘성’에 대해 경험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을 경험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성’을 겪게 되어 아이의 건강이나 미래에 해가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이 성적 존재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TV나 신문, 인터넷, 게임물 등에서는 온갖 방식으로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특히 여아들은 ‘잘 살고 싶으면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매일같이 세례받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이 ‘섹시’하지만 않고 ‘섹스’를 하면 큰일이 납니다. 성적존재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존재해야 할 아이들이 ‘섹스’를 하면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닙니다. 성인도 아닌데 성을 밝히는 위험한 존재가 되고, 순진한 성인들을 유혹하여 타락으로 이끄는 사악한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그 아이들은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과 구별해서 처벌받고 갱생되어야 하지만, ‘성인’이 아니니 최소한 처벌은 면해주겠다는 선처(?)로 ‘보호관찰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보호관찰이라 하여 6개월에서 길게는 2년동안 ‘소년원’에 격리되거나 ‘야간통행금지’ 명령을 받아 아무 때나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는 보호를 받는데, 아이들에게 ‘소년원’은 ‘감옥’으로 ‘야간통행금지’는 ‘전자발찌’와 같은 처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012년 12월 전면개정되어 올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아청법에서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과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을 분리하고 있는데, 성폭력을 당하면 피해 아동‧청소년이 되고, 성매매를 하면 대상 아동‧청소년이 됩니다. 피해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호와 돌봄의 아버지 역할을 해주는데 반해 대상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국가가 처벌과 갱생의 아버지 역할을 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의 상황이 성폭력인지 성매매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들어, 14살짜리 아이가 명절 때 친척집에 가서 사촌들과 함께 채팅을 하면서 놀았는데, 그때 채팅했던 성인이 계속 인터넷으로 말을 걸어와 다시 채팅을 하게 되었고, 그 후 그 남자가 드라이브를 해주겠다 하여 집까지 차를 몰고 와 아이는 남자의 차에 탔습니다. 남자가 아이를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데리고 갔고 그곳 모텔에서 잠시 눈만 붙이자하며 아이를 데리고 가 성폭력한 후, 다시 아이를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 주면서 2만원의 용돈을 제공하였습니다. 그 돈을 왜 주냐는 아이의 질문에 그냥 뭐 사먹으라 하면서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그 돈을 받아 집에 돌아온 아이는 그 사건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 계속 그 남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폭력당하고 성매매 알선까지 당한 사건이 있는데, 그럼 이 사건은 성폭력 사건일까요? 아니면 성매매 사건일까요? 또 다른 사례는, 한 동네에서 함께 친구로 지내왔던 세 아이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 셋 중 한 아이는 가출하여 성인남성과 조건만남을 하며 거리에서 살고 있고, 두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데, 어느날 세 아이가 거리에서 대학생 오빠 3명을 만났고 오빠들이 모텔에 가서 같이 놀자는 말에 꼬여 모텔에서 성행위를 하려던 중,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럼 경찰은 이 사건을 성폭력사건으로 처리를 했을까요? 성매매사건으로 처리 했을까요? 독자님들이 경찰이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셨을 거 같으세요? 불행히도 이 사건의 세 아이들은 모두 대상청소년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구분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법적으로 성폭력피해와 성매매대상으로 구분해 놨는데 그나마 법집행 현장에서는 그 구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수사 편의적으로 아이들 모두를 대상청소년으로 분류해버린 것입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상황에 저희는 경악을 했지만, 정작 아이들은 성폭력 피해인지, 대상아동·청소년인지 자신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어떤 보호를 받아야 하고, 어떤 침해를 받았는지 그 차이에 대해 전혀 이해도 없었고, 그저 본인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됐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성폭력 범죄자와 성구매 범죄자 사이에도 굉장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구매 행위는 성폭력 범죄보다 훨씬 가볍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성인 성범죄자들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폭력을 성매매의 형태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쁘다’, ‘사랑한다’ 등의 감언이설로 꼬이고 선물이나 음식을 사주고, 용돈과 심지어 ‘조건을 할 거면 오빠랑 해라’라며 지속적인 만남과 성행위의 대가를 제공하여 실제 수사 현장에서 본인들은 이 아이들과 연애를 한거라고 말하거나 성매매는 인정하지만 성폭력은 아니라는 증거를 만들어 제출하고 있습니다. 점점 지능화하고 있는 이들 성범죄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제재할 수 있을까요? 성구매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들 성범죄자들은 어쩔 수 없으니 우리 아이들 단속이나 열심히 하자는 방법만이 최선일까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정책이 갈수록 아이들의 자율권이나 창조력, 상상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사고들은 모두 부모의 탓으로 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방향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할 일이 많습니다.
2014년도에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건들을 법적으로 문제제기 할 계획입니다. 아청법도 그렇지만 임신중절에 관한 법률도 현실적으로 위기 청소년들을 더욱 궁지에 몰고 있는 법률입니다. 수사 현장에서도 십대 아이들은 너무 함부로 대해지고 있음을 많이 느낍니다.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서 주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대변하고 보호해야 할 부모들도 없으니 정말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청소년성매매피해상담소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육과 치유프로그램을 가족으로 확대시킬 계획도 있습니다. 원가족의 문제가 하루이틀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의지가 있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함께 노력해서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래저래 2014년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내년엔 5기 사또상담원들이 자신들의 성장을 위한 길을 떠나게 될 것이고,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이 길에서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하며 신나게 또 한 해를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많은 분들이 우리의 길에 동참해 주시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